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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과 방첩 조직 개편으로 국가 안보수사 체계의 대변화가 이뤄진 가운데, 최근 중국인 군사기밀 수집 사건 및 현역 병장 포섭 사건 등 외국 정보기관의 공작 수법은 날로 치밀해지고 있다.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고도의 전문성과 장기 추적이 필수적인 간첩수사 특성상, 수사권 조정에 따른 안보 공백을 막기 위해서는 경찰의 수사 역량 점검과 함께 정보·수사 기관 간의 촘촘한 공조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사진=챗GPT) |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한때 대한민국 곳곳에는 간첩을 경계하자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중앙정보부와 국군보안사령부가 대공수사의 양축을 담당하던 시절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법사찰과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권력기관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권한의 남용을 막는 것과 국가를 지켜야 할 방첩 기능까지 약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해야지, 칼날 자체를 뽑아버려서는 안 된다.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국가정보원이 됐고, 국군보안사령부는 기무사와 안보지원사, 방첩사를 거쳐 최근 국방방첩본부 등으로 기능이 분산됐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2024년 경찰로 완전히 이관됐다. 현재 민간 영역의 간첩수사는 경찰이 담당하고, 국정원은 관련 정보를 수집해 수사기관에 제공한다.
문제는 안보수사가 일반 형사사건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간첩 혐의를 밝혀내려면 오랜 기간 신분과 자금 흐름, 접선망을 추적하고 외국 정보기관과의 연결고리까지 입증해야 한다. 민생치안과 강력·경제범죄까지 짊어진 경찰이 고도의 전문성과 장기 추적이 필요한 간첩수사를 감당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인력과 조직, 정보망을 갖추고 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위협은 이미 병영과 군사기지 안팎까지 파고들었다. 최근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중국인 2명이 군사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구속됐다. 한 명은 군산공항 인근 호텔에 수신 장비를 설치해 전투기와 관제탑 사이의 교신을 엿들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한 명은 평택 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군장점을 운영하며 기지 근무자를 통해 한미연합훈련 자료와 인사정보 등을 빼낸 혐의를 받는다. 수집한 정보가 어디로 흘러갔는지, 배후에 외국 정보기관이 있었는지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중국 정보조직에 포섭돼 한미연합연습 관련 군사기밀을 넘긴 현역 육군 병장에게는 징역 5년과 추징금 1천800여만 원이 선고됐다. 외국 정보조직의 손길이 고위 간부나 군무원을 넘어 일반 병사에게까지 뻗친 것이다. 돈과 온라인 접촉만으로 병영 내부의 기밀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군의 보안체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구속된 중국인 2명에게 적용된 혐의는 간첩죄가 아니라 일반이적죄와 통신비밀보호법·군사기지법 위반 등이다. 종전 형법상 간첩죄가 ‘적국’을 위한 행위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의 지령이나 사주를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하는 행위까지 처벌하는 개정 형법은 오는 9월 13일부터 시행된다. 뒤늦게 법의 문은 넓혔지만, 법조문만 바꾼다고 간첩이 저절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대북 중심의 방첩체계에서 벗어나 외국 정보기관의 공작과 군사기밀 유출, 산업스파이와 사이버 침투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체계를 세워야 한다. 국정원의 정보수집, 경찰의 안보수사, 국방방첩본부의 군 방첩, 국방부조사본부의 안보수사 기능을 하나의 촘촘한 공조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인적 정보망이 사라지지 않도록 전문 인력도 장기간 양성해야 한다. 권한은 엄격히 통제하되 방첩 역량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국민도 “설마 간첩이 있겠느냐”는 안일함에서 깨어나야 한다. 간첩은 표찰을 달고 들어오지 않는다. 관광객과 상인으로 위장하고, 온라인 친구로 접근하며, 돈과 호의를 앞세워 내부자를 포섭한다. 과거의 공포정치를 되살리자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눈과 귀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최근 사건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간첩 혐의자의 숫자가 아니다. 외국 정보조직의 침투 수법이 도청과 촬영, 온라인 포섭과 내부자 매수로 치밀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응체계는 권한 이관과 조직 개편을 거치며 여러 기관으로 분산됐다. 정부는 각 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정보수집에서 수사와 처벌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방첩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안보의 빈틈은 조직의 간판을 바꾼다고 메워지지 않는다. 간첩죄를 개정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적이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해야 한다. 방첩의 실패는 한 기관의 실수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실패다. 정부는 지금 대한민국의 눈과 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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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훈 주필 |
일요주간 / 이재훈 주필 kor67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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