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백년대계는 졸속으로 세울 수 없다

칼럼 / 이재훈 주필 / 2026-07-09 2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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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해·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 등 참석자들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사관학교 통합 반대 총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newsis)

국군통합사관학교 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미래전과 인구절벽에 대응하기 위한 국방개혁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육·해·공군사관학교 총동창회와 예비역들은 국가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졸속 개편이라고 맞서고 있다. 정부는 개혁을 말하고, 반대 측은 전문성을 말한다. 그러나 양측 모두가 추구하는 목표는 하나다. 대한민국을 지킬 훌륭한 장교를 길러내자는 것이다.


문제는 개혁의 방향보다 추진 방식이다.
 

장교 양성체계는 국가의 백년대계다. 한 번 잘못 설계하면 그 결과는 수십 년 동안 우리 군이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충분한 연구와 국민적 공감대, 군 내부의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통합 논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최근 거센 반발 속에 정부가 기본계획 발표를 연기한 것만 보더라도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현대전이 합동작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정부의 판단은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드론과 인공지능(AI), 사이버전과 우주전이 결합되는 시대에 군 간 협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합동성 강화가 반드시 사관학교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은 이미 국방부 직할 교육기관인 합동군사대학교를 통해 각 군 장교들의 합동작전 능력을 키우는 교육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전 대비를 위한 합동교육 역시 이러한 제도를 더욱 발전시키고 확대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보완할 여지가 있다.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사관학교부터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세계 최강의 합동전력을 갖춘 미국도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를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임관 이후 합동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합동성과 전문성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키워야 할 역량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군은 특성이 생명이다. 육군은 육군답게, 해군은 바다를 이해해야 하며, 공군은 하늘과 우주를 이해해야 한다. 특성 없는 군은 결국 어느 분야에서도 최고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조금씩 아는 장교보다 자신의 영역을 완벽하게 이해하면서도 다른 군과 협력할 줄 아는 장교가 국가안보에는 더욱 필요하다.


역사는 단 한 사람의 명장이 국가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으로 나라를 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선에서는 니미츠 원수가 탁월한 전략과 용인술로 연합군 승리의 전기를 마련했다. 백 년 동안 단 한 사람의 명장을 제대로 길러낸다면 그 한 사람이 국가를 지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관생도 양성은 효율성보다 완성도를 먼저 따져야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통합 추진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정책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개혁이라기보다 과거 정치군인 문제에 대한 정치적 후속조치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러한 오해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부가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국방개혁은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국가안보는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중국의 군사력이 빠르게 증강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장교 양성체계를 성급하게 바꾸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개혁은 필요하지만, 졸속은 금물이다.


정부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각 군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합동교육을 강화하는 방안과 기존 교육체계를 발전시키는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군과 학계, 예비역,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폭넓은 공론화를 거쳐야 한다. 백년대계는 속도가 아니라 신중함에서 완성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사관학교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길러질 단 한 사람의 명장에게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을 수도 있다. 백년대계는 한 사람의 장수를 어떻게 키우느냐에서 시작된다.
 

▲이재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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